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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彼我)를 나누고, 상처를 만든다. 토큰 경제에 따라 행동하며 살인 보다는 교전 이라 완곡히 표현한다. 사람들이 죽었고, 그날 f, g, O, P번 따위로 명명된 사진은 지금도 살아있다. 『1968년 2월 12일』의 그날 하루만이 끊임없는 동어반복 위에서 울고 있을 따름이다. 소녀는 옆구리에서 쏟아지는 창자를 부여잡았고 그녀의 동생은 입속에 넣어진 총알을 먹고 죽었다. 소년이 총 맞은 오른쪽 다리를 절뚝이며 난자당한 다섯 살배기 동생을 목도할 때, 건너에서 젖을 먹이던 엄마는 난데없는 죽음과 맞닥뜨린다. 그리고 이 모든 각각의 세상 반대편엔 총칼을 든 군인들이 있었다. 학살이다. 해병제2여단 1중대원들이 마을에 진입한 뒤 주민 74명이 살해되었고 7년 뒤 전쟁은 종결된다. 한참 시간이 흘러 2001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쩐득르엉 베트남 주석에게 민간인 학살에 대해 사과한다. 그리고 이어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였던 현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비난한다. 6.25 참전 16개국 정상들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불행한 전쟁에 참여해 북한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준 것에 대해 사과한다 고 한 것과 같은 엄청난 일이라고. 거듭 시곗바늘이 돌아 2013년. 이제는 수교를 맺은 베트남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은 베트남을 사돈의 나라 라 불렀다. 양국 사이에 이루어진 수만 건의 국제결혼에 비유한 것이다. 정말 한국과 베트남은 사돈의 나라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이렇게나 많은 부부가 탄생했으니. 그러나 시간을 거꾸로 돌려 1968년으로 돌아가면, 그래도 베트남과 한국은 친절한 사돈의 나라일까?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 《플래툰》에서, 미국군 반스는 울부짖으며 항의하는 촌장의 아내를 거리낌 없이 사살하곤 촌장의 어린 딸을 총으로 겨눈다. 그리고 곧 내처 동료 일라이어스가 등장해 개머리판으로 반스를 내리치며 주먹다짐을 벌인다. 반백년 전 베트남의 퐁니, 퐁넛에는 일라이어스가 없었나 보다.엄마 젖을 빨던 태어난 지 반년도 안 된 아이는 그 품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있다. 레딘먼이라 이름 붙여진 아이가 놀랍게도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것처럼, 한편에서 탄생한 조사보고서라 불린 어처구니없는 종이 쪼가리 하나. 우리는 절대 양민을 학살한 일이 없다, 한국군 위장복으로 변장한 베트콩들의 소행이다. 이 한마디로 끝났다. 이 사람들이 이쪽에서 보면 이런 것이고, 저 사람들이 저편에서 보면 저런 것이다. 군사학과 교수였으며 그 자신이 군인이기도 했던 데이브 그로스먼은 자신의 책에서 말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총수의 80에서 85퍼센트는 자신 또는 전우의 목숨을 구해야 하는 상황에서 적군을 보고도 무기를 쏘지 않았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총을 쏘지 않은 군인의 비율은 5퍼센트에 가까웠다, 라고. 살해에 대한 거부감과 그러한 둔감화 를 언급한 것이다. 1968년 2월 12일 그날도 그랬던 것일까? 거리낌 없이 방아쇠를 당긴 것은? 죽임 당한 상대가 무기를 든 적군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을 교전 이 아니라 살해 라 부른다. 그러나 그들 살해자가 개인이 아닌 집단이라면 그것에는 면죄 라는 탈이 씌워져 공공연하게 적법화 되기도 한다. 다시 데이브 그로스먼. 「잔학 행위가 낳게 되는 최악의 사태는, 잔학 행위를 하나의 정책으로 제도화하고 시행하게 될 때 그 사회는 잔학 행위가 벌려 놓은 일들을 떠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살인의 심리학』 플래닛, 2011) 정부의 파병과 귀국 이후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했던 한국군 역시 전쟁 이후엔 피해자였다. 그리고 그들이 가해자였을 땐 상대는 총칼은커녕 삽 한 자루도 들고 있지 않았다. 이제 베트남전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으나 이 공식적 이란 표현은 정치화된 달큼한 단어에 불과할는지 모른다. 베트남에서도 한국에서도, 1968년 2월 12일은 계속되고 있다.
1968년. 파리 서부에서 발화된 베트남전 반대시위는 유럽 전체로 번질 만큼 전 세계적인 투쟁으로 불타올랐다. 흑인 민권운동과 반전운동으로 술렁이던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즈음 일본에서는 전후 평화운동이 시작되었다. 전 세계적인 항쟁은 ‘68운동’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그리고 2월 12일. 대한민국 군대는 베트남 퐁니·퐁넛을 공격해 무고한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을 죽였다. 그런데 왜? 잔인한 학살의 기억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베트남에서의 전쟁은 끝났지만 한국에서의 베트남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은 고발을 위한 보고서가 아니다. 한 사람의 기자로서, 시민으로서 우리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기록하려는 열망에서 시작되었다. 그날의 현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기 전에 진실의 역사를 남기고 싶었다. 철저한 취재와 조사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당시의 현장을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은 물론, 당사자들의 현재 모습까지 인터뷰를 통해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제, 베트남 시골 마을의 하루를 가득 채운 핏빛 공기를 호흡하며 대한민국의 눈부신 성취와 모순의 뿌리를 돌아보자. 그날 하루를 통해 1968년의 세계와 그 너머를 들여다볼 시간이다.
1968년 2월 12일 퐁니.퐁넛 마을 지도
주요 등장인물
머리말
프롤로그 총성, 어떤 수수께끼(1968년 2월 12일)
제1부 두 개의 전선
비열한 거리(로안의 권총) | -인과 응보의 시간(로안, 다리를 잘리고…) | 청와대 습격, 투이보 습격 (북한이 북베트남을 돕다) | 김신조와 대한민국(진정한 군사정부의 수립) | 용수의 돌림빵(평양에 나타난 학수 형) | -월북에서 납북으로(베트남전 첫 포로의 탄생) | 야유나무는 보았네(퐁니·퐁넛의 어떤 역사)
V제2부 야유나무 학살
소년과 소녀의 전쟁(응우옌티탄과 쩐지옙) | - 악착같이 살았어요 (응우옌티탄의 오늘) | -장난치던 한국군, 총을 쏘던 한국군(응우옌득상 인터뷰) | - 왜 쏘았지? 왜 찔렀지? (쩐지옙 이야기) | 저기 사람 있어요(남베트남군 응우옌싸의 비애) | -과자를 받았다, 무서웠다(응우옌티르엉과 응우옌티니아) | 아기는 꿈나라(엄마 품에서 살아난 레딘먼) | -14살에 가장이 되어…(레딘먼의 형 레딘묵) | 물소가 바꾼 생사(쩐티드억과 판르엉 가족) | - 채소와 닭은 내가 보살핀다 (쩐티드억과 판르엉의 황혼)
제3부 복수의 꿈
가장 잔혹한 공격(f와 g로 명명된 응우옌티탄) | 원수를 갚자, 산으로 가자(응우옌쑤와 쩐반타의 충격 | - 미국의 음모라고 생각했다 (마을 원로 응우옌쑤) | -지뢰를 밝고 숨을 헐떡이던 동지(쩐반타의 산 생활) | 나는 스나이퍼다(베트콩이 된 탈영병 쩐반남) | - 총이 아닌 말로 싸웠지 (쩐뜨 이야기) | 사진, 찍은 자와 찍힌 자(미군 상병 본과 소녀 쩐티드억)
제4부 해병의 나날
패싸움의 머나먼 추억(최영언 중위, 호이안에 가다) | - 병신 새끼들아 (1966년 잡지 아리랑 에 실린 어느 부상 참전군인의 절규) | 하얀 정글(죽든지, 아니면 죽이든지) | 알랭 들롱의 사인처럼(전투보다 중요한 어떤 작전) | 양키, 쩐의 전쟁(12시간 내에 군표를 수거하라) | 중앙정보부에서의 하루 (왜, 누가 쏘았습니까?)
제5부 조작과 특명
전쟁범죄 사실이오?(웨스트몰랜드가 채명신에게) | 베트콩의 사악한 음모(채명신이 웨스트몰랜드에게 ) | 우리가 곤충인가요(탄원서, 티에우,밀라이) | 절대로, 절대로 언론에는…(사이밍턴 청문회라는 먹구름) | - 아마 3소대 3분대원 몇명이… 할 말이 없지 슬픈 이야기야 (1소대장 출신 최영언 씨 인터뷰)
제6부 체 게바라처럼
쏘지마, 피곤해(박정희를 말리러 온 밴스) | 벌레 편에서 싸우다(베헤이렌 오다 마코토의 투쟁) | -전후 일본 평화운동의 대부(오다 마코토의 삶) | 새장을 뚫고 스웨덴으로(김진수의 탈출과 망명) | 여권 위조 007 작전(자테크와 다카하시 다케토모) | -한국의 병역 거부자들도 지원(다카하시는 지금도 시민운동가) | 게바라에서 호찌민까지(거대한 횃불, 68운동)
에필로그 2014년 2월 12일(위령비, 74개의 이름 앞에서)
발문 1 | 역사전쟁을 끝낼 도화선 · 박태균
발문 2 | 역사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질문 · 정희진
연표
퐁니·퐁넛 위령비의 사망자.부상자 명단
베트남전 당시 해병제2여단 이동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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