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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와 조선

ksbv 2024. 2. 9. 07:14


주(周)나라, 하면 주역(周易)을 생각하는 것이 정해진 코스인 듯 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문화해설을 공부하며 알게 된 좌묘우사(左廟右社), 전조후시(前朝後市) 등의 도시 건설 원리가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 근원을 두고 있다. ‘주례(周禮)’는 주(周) 왕실의 관직 제도와 전국 시대(戰國時代) 각 국의 제도를 기록한 책이다. 사실 주나라는 우리와 꽤 밀접한 연관을 갖는 나라이다. 우리와 주나라는 노(魯)나라의 공자(孔子)와 남송(南宋)의 주자(周子)로 인해 연결되었다. 장인용의 ‘주나라와 조선’을 통해 우리는 주나라의 종법(宗法)제도(制度)를 편의대로 받아들인 조선이 자초한 갖가지 폐해를 알게 된다. 종법 제도란 장자를 우선시하는 제도이다. 공자가 받아들여야 할 이상(理想)으로 생각한 나라가 주나라이다. 저자는 우리가 유학과 성리학에서 전범(典範)으로 내세우는 이상향으로서의 주나라에 대해 어렴풋이 알 뿐 역사적 실체로서의 주나라 자체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고 말한다.(24, 25 페이지) 특기할 것은 하(夏), 은상(殷商), 주(周)가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멸망시키고 또 다른 나라가 그 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공존한 것이다.(29 페이지) 춘추시대의 공자가 다시 돌아가자고 한 주나라의 기초를 만들고 대표하는 인물이 문왕(文王)이다. 공자가 편찬했다는 ‘시경(詩經)’에는 문왕을 칭송하는 시들이 한 부분을 차지한다. 문왕은 은상(殷商)을 쳤는데 이는 주나라가 자신들보다 10배 이상인 세력을 가진 큰 나라를 치는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었다. 아버지 문왕(文王)의 뒤를 이은 무왕(武王)은 은나라를 친 후 은상의 조상을 모시는 묘당(廟堂)에 가서 제사를 올렸다. 무왕은 은상의 조상들에게 주왕(紂王)의 죄상을 낱낱이 고하고 자신은 폭군 주왕(紂王)을 벌하기 위해 할 수 없이 무력을 동원했다고 밝혔다.(50 페이지) 어찌어찌 해서 주왕의 군사를 이기기는 했지만 큰 틀에서 보면 아직 은상 사람들 전체를 대적하기에 중과부적인 주와 무왕이 취한 절묘한 방편이었다. 주나라는 중원의 서쪽에 자리 잡은 나라였다. 동쪽의 은상에게 억눌린 채 설움을 겪고 신하의 예를 다하는 종속된 처지였다가 은상을 극복하고 중원의 패권을 차지했지만 삼감과 주왕의 아들 무경의 반란에 맞닥뜨렸고 동이족들에 시달렸다. 동이족은 고구려를 떠올리겠지만 굉장히 다양한 부족들의 통칭이다. 주나라가 은상을 꺾을 수 있었던 것은 동이족들이 은상 주왕의 힘을 뺀 덕분이라 할 수 있다.(96, 97 페이지) 주나라 혼자 드넓고 이민족들이 무수한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 취한 특단의 조치는 두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하나는 은상의 유민들을 안정시키고 그들에게 다시 자치권을 주어 제후국(諸侯國)으로 주나라 질서 안에 편입시키는 것(98 페이지)이고 다른 하나는 주나라가 동쪽으로 이사가는 것이다.(100 페이지) 주나라는 서쪽에서 중원(中原)만을 바라볼 때는 중원을 전부로 알았지만 막상 들어서자 사방에 위협적인 많은 민족이 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중원의 안정화를 위해 주나라가 견지한 정책은 봉건(封建)과 종법(宗法)이었다.(101 페이지) 종법의 종(宗)은 상에 위패를 놓고 제사 지내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이다.(102 페이지) 제사를 지낼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자 통치권의 상징이었다. 은상 사람들은 낙읍의 동쪽에 거주했기에 그들의 묘당은 동쪽에 있었고 주나라 사람들은 서쪽에 살았기에 후직을 비롯한 주나라의 묘당은 서쪽에 있었다. 이것이 예법으로 전해져 지금의 서울에도 왕궁의 동쪽에 종묘가, 서쪽에 사직단이 있는 것이다.(105 페이지) 주나라가 은상으로부터 이어받은 종법이 주나라 특유의 장자 상속과 결합하고 다시 이것이 봉건과 결합하여 주나라 특유의 정치체계와 예법이 만들어졌다. 중과부적의 상황에서 이민족들을 다스리기 위한 수단으로 종법과 봉건을 합친 주나라 고유의 통치제도가 탄생한 것이다.(106 페이지) 은(殷)나라는 좌묘우궁(左廟右宮)이었다.(248 페이지) 궁 하나와 묘 하나(궁 옆에 묘)인 것이었다. 주나라는 좌묘우사였다.(249 페이지) 주나라는 궁궐의 동쪽에 은상의 조상을 모시는 묘당을 짓고 서쪽에는 자신의 조상을 모시는 묘당을 따로 지어 두 조상들에 대한 제사를 이어갔다.(51 페이지) (우리가 보기에) 경복궁 왼쪽에 사직단, 오른쪽에 종묘가 있는 조선의 궁(宮)과 묘(廟)의 배치는 주나라의 궁여지책 또는 방편을 따른 것이다. 중요하고 흥미로운 말은 천명(天命)이란 말이다. 주의 무왕은 은상의 조상들을 향해 제사를 올리며 주왕(紂王)을 친 것은 천명(天命)이라 읍소했다.(55 페이지) 왕이 된 것이 천명인지에 대해 반신반의했던 태조의 머리에 천명 사상을 심어주고 세상을 바꾸고자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정도전이다.(60 페이지) 정도전은 유학자이자 상리학자로서 당시 손에 꼽을 정도로 학식이 깊은 사람이었다.(67
주나라와 조선이 추구했던 이상국가와 오늘의 우리 상황 겹쳐보기

조선은 왜 주나라를 이상국가의 모델로 삼았으며, 이를 어떻게 실행에 옮겼는가
그 과정과, 그로 인한 빛과 그림자를 함께 탐구한 실험적 인문교양서

주나라는 공간적으로 수만 리, 시간적으로 수천 년 떨어진 이질적인 중국 중원의 고대국가이다. 그런데 혁명설계자 정도전은 역사 속의 주나라를 호출해 새로운 나라 조선의 각종 제도 및 도성건축까지 본받으려 했다. 그리고 조선 후기의 선비들은 말끝마다 존주사대(尊周事大)와 존화양이(尊華攘夷)를 부르짖었다. 이처럼 조선 5백 년을 온통 사로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주나라를 오늘날의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는 뜻밖에도 ‘우리와 연관 깊은 주나라의 실체에 대해 거의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면서 주의를 환기시킨다.

주나라는 자국보다 10배 이상의 강대국인 은나라(이하 은상)를 쓰러뜨렸다(대략 기원전 1046년경으로 추정). 주나라가 맞이한 최대의 과제는 어떻게 강대국 은상의 유산을 극복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느냐 이었다. 이를 위해 주나라는 천명, 종법과 봉건 제도, 예악, 공평한 분배구조 등을 동원한다. 주의 새 나라 건립은 무왕이 달성하지만, 이런 여러 제도를 만들어내고 정착시킨 사람은 그의 동생인 주공 단(旦)이었다. 이후 주나라는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나라의 간판을 내릴 때까지(대략 기원전 256년) 장장 700여 년간 중원의 중심 노릇을 했다.

이 책은 주나라가 당대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천명, 종법, 예악, 분배(공평성)를 어떻게 완수했는지 이야기한다. 동시에, 조선에서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주나라의 상황과 교차시켜가며 설명한다. 그리하여 주나라와 조선의 같은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인지를 따져보며, 최종적으로 주나라가 조선에 미친 영향을 개괄하고 있다.



머리말/주나라가 조선을 타고 우리에게 들어왔다

1. 우리 안의 주나라
*주나라가 멸망시킨 은상의 호칭과 연대 *주나라의 푸르고 투명한 하늘
*정도전, 이성계를 설득하다
2. 주나라의 탄생 그리고 천명사상
*주나라의 이주, 신의 한 수가 되다 *문왕이 기초를 닦은 주나라
*무왕이 중원을 장악하다 *묘당과 사직단에 숨은 사연
*약한 정복자의 묘수
3. 조선의 천명
*정도전의 조선 설계 모델은 주나라 *천명의 실현으로써의 개혁과 혁명
*역사의 수레바퀴에 뿌려진 피
4. 종법 탄생의 비밀
*봉건의 시작과 삼감의 난 *중원 통치의 두 가지 길
*종법, 제사의 법칙이 통치의 법칙으로 *봉건은 낡은 것이 아니다
*대종과 소종, 맏이에게 복종하라
5. 조선에 종법을 심어라
*조선 사대부들, 주희에 열광하다 *‘머리의 성리학’과 ‘몸의 습속’ 사이에서
*종법 정착의 난관들 *‘존존’은 사라지고 ‘친친’만 남다
*본말전도의 종법이 가져온 해악
6. 주나라의 예악은 무엇인가
*‘예’와 ‘악’이 근본이요 불가분인 이유 *‘예’와 ‘악’과 술
*예악의 만남이 가져온 변화들 *예악제도 부침의 역정
7. 조선의 예악을 만들자
*「용비어천가」와 예악 *‘신악’에 숨은 깊은 뜻
*‘주나라’라는 이상국가의 모티프는 중국 것이 아니다
8. 주나라는 은상보다 공평한 나라였다
*‘종법’의 공동체성과 ‘공평성’ *‘정전제’는 과연 실재했을까
*씨족국가, 성읍국가, 봉건국가 *낙읍 건설에 스며 있는 주나라의 이념
9. 백성을 위하는 것이 조선의 기반이다
*개국 핵심사업 세 가지 *과전법의 민본주의
*유학입국을 실현한 한양 건설 *태종의 최대 업적은 세종
*20년 넘는 시간을 들여 완성한 세제 ‘공법’
10. 조선은 과연 주나라라는 이상을 성취했는가
*천명과 예악의 조선, 종법의 사슬에 묶이다 *종법이 끼친 해악
*전환기의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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